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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척준경 고려 최강의 무신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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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고려의 최강의 명검 주인을 잘만나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불렸지만 옛 주인을

잃고 새주인을 잘못만나 역적으로 불리게 된 무인 척준경을 알아봅시다.

척준경 고려중기 무신 본관은 곡산 검교대장군 척위공의 아들입니다.고려시대의 문관으로 황해도 곡주 출신입니다.

많은 이들이 척준경을 무관으로 알고 있는데,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 중추원 별관 출신,즉 문관으로 전쟁에

참가 했습니다.고려는 예정과 공양왕 때를 제외하곤 무관을 따로 뽑지 않았습니다.


척준경의 활약상은 가히 삼국지의 맹장들의 활약상을 보는듯 합니다.아군이 포위되거나 전세가 불리해지면 

쌍칼을 차고 적진으로 차고 적진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 혼자서 곧바로 적진장수의 머리를 베어 적진을 초퇴화

시켜 전투의 정세를 혼자서 역전 시켯습니다.삼국지의 맹장들과 견줄말한 활햑상이지만 척준경의 믿을 수 없는

활약상은 모두 정사에  기록된 실화들 입니다.애초에 그는 이자겸의난에 참가한 바람에 역사 속에 잊혀 기록

자체가 관심받지 못했기에 척준경의 활약상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척준경은 계림공의 종자로 북방 군부대의 말단 부사관 격인 추밀원 별가로 활동하게 됩니다.별 볼일 없었던

척준경은 여진 토벌에 전쟁에서 엄청난 무공들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여진족들은 세력을 키워 고려 국경을 수시로 침범하고 있었습니다.이에 숙종은 임간을 사령관으로 동여진

정벌을 보냈지만 임간이 무리하게 여진족 부대를 추격하다 되려 정주성을 함락당하는데 이때 척준경이 임간에게

말과 무기를 요구하며 홀로 적진을 돌파 하겠다고 합니다.임간이 무기를 내어주니 척준경은 즉시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격해 적장수를 죽여 당황한 여진족이 후퇴하자 고려군이 이를 역습해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되고 

척준경은 이전투로 천우위록참군사 벼슬을 받게 됩니다.

1108년 패퇴한 여진족이 군을 재정비해 가한 촌병목 오솔길로 고려군을 유인 매복 기습을하여 수만의 병력으로

포위하게 됩니다.진퇴양난에 빠진 고려군은 결국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하고 결국 윤관의 주위엔 100명도 안되는

별사만 남게 됩니다.이소식을 들은 척준경이 나서려 하자 척준경의 동생이 개죽음 당하니 가지말라고 만류하자

척춘경은"나는 이 한몸 나라에 바쳤으니 가만히 있을수 없다.늙으신 아버님을 부탁한다"이 말을 남기고 병사

10명을 대리고 적진에 돌격하여 윤관을 구출하게 됩니다.그러던중 지원군이 와서 적죽들은 도주하게 됩니다.

윤관 구출 12일 후 여진족 2만명이 영주성을 공략 하였습니다.이 때 성을 지키던 고려군은 적의 절반 밖에

안되는 1만이였습니다.하지만 이때 척준경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진에 돌격하여 적장 19급을 베었습니다.

여진군은 이에 혼비백산하여 퇴각하게 됩니다.윤관과 지위부는 감격하여 척준경의 손을잡고 절을 했다고 합니다.

1108년 2월 옹주성이 여진군 수만에 포위 당하게 됩니다.구원군이 오지 않자 척준경은 밤중에 밧줄을타고

성벽을 내려와 100km가 넘는 적진을 주파하여 정평 까지 갔습니다.이에 여진군은 웅주로 가는 길목에 수많은

장벽과 관문을 세워 두었지만,척ㄱ준경은 그대로 구우너부대를 이끌고 관문을 하루에 하나씩 깨며 가로막는

적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옹주성까지 진격합니다.웅주성 사람들은 척준경을 보고 울면서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일당백의 장본인이자 실전에서 인정받은 미친 전투력을 가졌던 맹장 척준경은 이후 고려 무신계의 일인자가

됩니다.하지만 이토록 전설적인 무장이엇던 축준경은 인생 중반기에 권력에 욕심을 부려 이자겸과 동맹을 맺고

이자겸의 난에 앞장서 참가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남아 역사 속에서 철저히 잊혔습니다.

초인에 가까운 무력으로 한반도에서 삼국지 맹장들의 활약상을 실현시킨 척준경은 비록 역적으로 남은 악인이긴

하지만 여진 토벌 전쟁에서 혼자서 전무후무한 군공을 세웠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기억할만한 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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